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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청원/정보공개청구] '구제역 돼지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다하라' 그 이후
2018-06-05



2018년의 봄 무고한 돼지들이 구제역의 바람으로 서늘한 땅에 떼로 파묻힌지 두달이 흘렀습니다. 동물권단체 동물해방물결이 이를 규탄하고자 4월 6일부터 5월 6일까지 진행한 국민청원에는 총 8,613명의 국민이 동의해주셨습니다.


청원에 대한 답변을 들을 수 있는 20만 명에는 턱없이 모자란 수였지만, 그 과정에서 살처분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동물해방물결이 네이버 포스트에 작성한 글은 네이버 동물공감판에 노출되어 7만 6천여명이 넘는 네티즌이 읽고, 공감했습니다. 400개에 가까운 댓글이 달렸고, 주간베스트에 올라 예정보다 더 오래 목소리를 낼 수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또 구제역이 발생했구나’하는 지나가는 뉴스로 보지 않고 안타까워하며 국민청원에 동의, 공유해주신 덕입니다.


이제 국민은 단순히 구제역으로 인한 돼지고기 값 인상만을 신경쓰지 않습니다. 가축전염병으로 살처분되거나, 고기로 도살될 동물이라 하더라도, ‘생매장’당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억울한 그들의 마지막 순간에 최소한의 예의라도 보여주길, 매년 반복되는 가축전염병과 살처분에 있어 정부가 더 근본적인 원인 및 해결책을 짚어내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국민청원 동의 댓글 일부 발췌>




<동물해방물결 네이버 포스트 베스트 댓글>




동물해방물결은 올 3-4월 집행된 구제역 살처분에 대해 보다 정확히 알기 위해, 농림축산식품부와 김포시에 관련 정보를 청구했습니다. 최종 확인 결과, 확진농가 2곳에서 살처분된 돼지가 4,435마리, 8농가에서 예방적 살처분된 돼지가 7,291마리로, 총 11,726마리가 땅에 묻혔습니다. 보다 자세한 답변 내용 및 문제점은 두 가지 방면에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이번에도 반복된 ‘생매장식’ 살처분: 이산화탄소 가스법


2018년 3월 21일 갱신된 구제역 긴급행동지침(SOP) 속 살처분의 기본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살처분은 동물종에 따라 전살법, 타격법, 가스법(이산화탄소 등), 약물 사용법 등 동물보호법 제10조의 규정에 따라 정해진 방법 중 현장에서 적용이 쉽고 신속히 완료할 수 있는 방법으로 실시하되,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여야 하며, 동물의 즉각적인 의식 소실을 유도하고 의식이 소실된 상태에서 절명이 이루어지도록 한다.”


긴급행동지침은 1) 전살법, 2) 타격법, 3) 약물사용법, 4) 이산화탄소를 사용한 가스법, 5) 질소거품을 사용한 가스법까지 총 5개의 살처분 방법을 제시합니다. 전살법은 말 그대로 전기가 흐르는 전극을 통해 기절, 죽음에 이르게 하는 방법이고, 타격법은 타격기를 이용하여 두부를 타격하여 기절시킨 후 연수 및 척수를 파괴하여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약물사용법은 즉각적인 안락사가 가능한 약물을 동물에게 직접 주입하여 죽음에 이르게하는 방법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스법은 가장 용이한 만큼 불완전합니다. 구덩이를 파내어 동물을 산채로 몰아넣고 상단부를 밀봉한 후, 이산화탄소 또는 질소거품을 주입하여 질식시킵니다. 주입 후 구덩이를 확인하여 의식이 회복된 돼지가 발견되면, 약물을 재투여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죽음을 유도한 후 최종 매몰합니다.


<구제역 긴급행동지침 속 질소가스법 예시>


정보공개청구 결과, 올 봄에도 여전히 이산화탄소 가스법을 통한 ‘생매장식’ 살처분만이 이루어진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한 마리당 투입된 이산화탄소의 양은 1.5kg으로, 12,000여 마리에게 총 18,000kg가 사용되었습니다. 한 번에 몇 백, 몇 천의 돼지를 기절, 질식사 시키려다 보면, 한 번의 가스 주입만으로 안 될 때가 분명 있습니다. 의식을 회복한 돼지에게 제대로 된 안락사 약물이 추가 사용되었는지 문의하자, 그저 다시 한번, 이산화탄소를 주입했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이런 식이면, 반기절 상태에서도 '대충 사망'으로 판단돼, 그대로 매몰된 돼지가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김포시 살처분 현장 기사사진>


또한, 긴급행동지침에는 “구덩이내의 동물이 서로 올라타거나 겹쳐지지 않도록 한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살처분의 빠르고 효율적인 수행을 중요시하는 현재의 지침에서 의무는 아니지만, 구덩이로 몰린 동물들의 고통을 고려해야 한다고 '권고'되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언론을 통해 공개된 현장 사진에서는, 아주 어린 돼지들도 있었습니다. 몸부림 치는 돼지들 틈 속에서 어린 돼지들은 이중으로 고통을 겪으며, 생을 마감했을 것입니다.



터무니 없이 부족했던 현장 인력과 외상 트라우마


포천시 구제역 살처분팀에 동원된 인력은 총 300명이라고 합니다. 단순 평균을 내보면 1농가당 투입인원 30명, 살처분팀 1인당 약 40마리씩 살처분한 꼴입니다.


생매장식 살처분은 인간 동물의 고통도 초래합니다. 살처분 집행에 투입된 공무원들은 실제로 상당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2017년도 국가인권위원회의 <가축매몰(살처분) 참여자 트라우마 현황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살처분 과정을 경험자의 응답 평균이 경우울증에 해당하고, 살처분 경험자들에게는 집단 무기력증이 나타났습니다.


“매몰하는 장면을 지켜봐야 하고, 때려서라도 죽어서 묻어야 하는 학살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상황 … 죽임의 주체가 된다는 것이 자괴감에 빠진다”

“살처분이 마무리짓는다고 해서 전염병이 소멸되는 것이 아니다, 매년 반복되는 것이다. 매번 지속적으로 해결도 안 된다는 것이 문제다”

- 2017년도 국가인권위원회의 <가축매몰(살처분) 참여자 트라우마 현황 실태조사> 보고서 일부 발췌-



마지막까지 '효율'적으로 희생된, 1만 2천의 돼지를 기억합니다.


가스법을 통한 ‘생매장식’ 살처분의 전면 재검토가 인간 동물과 비인간 동물 모두를 위해 시급합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매년 반복되는 가축전염병과 뒤따르는 살처분의 근본적 원인을 파헤쳐야 합니다. 2000년대부터 가축전염병이 이렇게나 자주, 빠르게 퍼져나가는 것은 분명, 지나친 육식을 위한 공장식 축산 시스템 때문입니다. 정부와 소비자 모두, 이를 부인하고 외면해선 안됩니다.


구제역으로 살처분된 돼지들은 고통스럽고 억울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더 가슴아픈 것은 그러한 죽음이 지금 이 시대를 사는 모든 돼지들에게 시간 문제일 뿐,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구제역이 창궐하지 않아도, 돼지들은 고기를 위해 도축됩니다.


동물해방물결은 발족부터 비거니즘을 강령으로 내세우며 공장식 축산과 육식에 반대해왔습니다. 이번 국민청원도 살처분 당한 돼지들, 궁극적으로는 공장식 축산으로 고통받는 모든 동물를 대변하고자 하는 활동이었습니다. 청원성공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동물해방물결은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의 관심과 뜻, 그리고 희생된 돼지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함께라면, 돼지 해방을 외칠 정의로운 여정은 앞으로 더 강력해질 것입니다.